I Became the Goddess of a New World

Chapter 38




처음 엘더리치 레이드의 계획을 세웠을 때, 나는 1관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레이드 보스는 일반 던전과 달리 좋은 보상을 주기에, 일주일 간격으로 쿨타임을 두었다.

그런데 대전쟁 배경의 32인 레이드, 이걸 일주일마다 한다면 피로도가 상당할 것 같았다.

현재 원혼의 메아리만 봐도 효율적이지만, 사냥 피로도가 너무 높아 비인기 사냥터로 꼽히는데.

매주 대전쟁을 해야 한다? 이건 피곤한 걸 넘어서 짜증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스킵 기능을 추가했지.’

한 번이라도 1관문을 클리어했다면, 대전쟁을 스킵할 수 있는 기능을 넣어 놓았다.

당연히 관문 자체를 스킵하게 해주는 건 아니었고, 시체 골렘이 소환되는 부분까지만.

이 스킵 기능은 공격대에 포함된 이들 중 한 명이라도 클리어 기록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른 의도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니까.

예를 들어 버스라든가, 작업장이라든가.

‘매주 32명을 모으는 것도 힘들겠다.’

그래서 1관문과 달리 2관문과 3관문은 사람이 많을수록 레이드가 더욱 더 어려워지도록 설계했다.

– 낙인? 윗트야 디버프 감지 가능해?

– 잠깐만···. 낙인에 걸린 사람이 엘더리치의 패턴에 맞을 때마다, 엘더리치의 체력이 회복된다.

엘더리치의 낙인. 이 디버프는 레이드에 입장한 플레이어 중 절반에게 랜덤으로 부여된다.

– 아, 씨. 계속 회복하잖아.

– 16명. 전체 인원 중 절반이지.

엘더리치의 패턴은 수십 가지가 있으며, 대부분 범위가 넓어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엘더리치는 계속해서 어그로가 바뀌기에, 패턴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 이거, 안 되겠다.

결국 대협 킴은 레이드를 중단하고, 공격대 해산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공격대는 8개의 파티로 나뉘었고, 그렇게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 확실히, 전보단 할만하다.

– 이제야 진도가 좀 밀리네.

– 각자 그림자에서 가시 조심해라!

낙인의 대상이 16명에서 2명으로 줄었으니, 할만할 수밖에.

‘레이드 보스는 입장 인원에 맞춰 난이도가 조절되니까.’

아마 반나절 정도 머리를 박다 보면 해답이 보일 것이다.

뭐, 해답을 본다고 해서 바로 풀 수 있는 레이드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제작자로서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괴로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대기업 파티의 공략 진행률이 30% 정도 된다면.

다른 파티는 대부분 20%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제 보니 레이븐에 과몰입한 사람들 모임이네.’

특히 대협 킴과 스윗트. 두 사람이 레이븐에게 품은 감정은 매우 특별했다.

그 외에 스즈카는 레이븐을 소중한 사람 정도로 여겼고.

패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레이븐을 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기대되었다. 3관문 0줄에서 이루어지는 보스의 변신.

그걸 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그 순간이 오기만을 고대하며, 대기업 파티의 레이드를 지켜봤다.

***

[스윗트 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Akashic Records 22시간 전]

엘더리치 레이드를 시작한 지 22시간이 경과했을 때쯤, 대기업 파티는 2관문을 클리어했다.

클리어 컷씬에서 엘더리치는 죽지 않았고, 어딘가로 후퇴해 모습을 감추었다.

“와. 진짜 존나 힘들다.”

털썩—

평소에 욕을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 스윗트는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남은 관문은 3관문.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엘더리치를 무찌를 수 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후, 힘들었다.”

레이드 내내 엘더리치의 패턴으로부터 파티원들을 지켰던 패귀도 묵직한 검과 방패를 내려놓고서 스윗트의 옆에 앉았다.

“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다른 파티원과 달리 제법 멀쩡해 보이는 대협 킴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질색한 표정을 지은 스즈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3관문 맛만 보고 해산하자.”

“그럴까요?”

“그 정도는 나도 찬성.”

통일된 의견에 대협 킴은 앉아 있던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대협님은 진짜 체력이 장사야.”

“뭘, 일반인 평균 정도지.”

“일반인 다 뒤졌구먼.”

모든 준비를 마친 대기업 파티는 그대로 3관문에 처음으로 입장했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은 네 사람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분명, 무너진 성안으로 들어왔어요.”

“레이븐 왕국인가.”

2관문의 배경은 대전쟁이 발발했던 전장의 후방이었다.

사방에 절벽이 있는 메마른 황야였으며, 절벽 너머로 성의 실루엣을 관찰할 수 있었다.

미니맵으로 봤을 때 성이 있던 곳의 위치는 엘더리치의 부활로 인해 멸망한 왕국, 레이븐이었다.

왕의 알현실.

곳곳에 카펫에 묻은 핏자국과 뼈만 남은 기사의 시체가 보였다.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왕좌가 있는 곳 앞에 엘더리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달라.”

검게 물든 역십자가. 푸른 불길을 가두고 있는 랜턴. 썩은 살점으로 뒤덮인 지팡이.

첫 트레일러와 이번에 나온 시네마틱 트레일러. 그리고 예고편에서 등장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 Raid Boss 불완전한 고대의 사령술사 Lv.55 ]

“엘더리치가 아니야.”

앞서 상대했던 엘더리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느껴지는 압박감만으로도 별개의 존재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덜덜—

스윗트는 갑자기 떨리기 시작한 제 손의 팔목을 다른 손으로 붙잡았다.

한동안 괜찮았던 수전증이 하필이면 지금 타이밍에 도질 줄이야.

엘더리치의 탈을 쓴 고대의 사령술사는 랜턴을 흔들었다.

그 랜턴에 시선이 집중된 스윗트는 위화감을 느꼈다.

현재 스윗트의 서브 직업은 감정사.

감정사의 스킬인 ‘감정’은 지정할 수 있는 대상의 폭이 매우 넓었다.

아이템은 기본이고 정체불명의 디버프나 버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몬스터를 대상으로도 쓸 수 있었고, 현재 맵을 대상으로 지정할 수도 있었다.

많고 많은 선택지 중에서 스윗트는 본능적으로 저 랜턴을 향해 감정을 사용했고.

[ 레이븐이 갇힌 악몽의 랜턴 ]

– 레이븐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

– 악몽 실현까지 잔여 시간 29:45

잔혹한 현실을 담은 시스템 메시지와 동시에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 사망했습니다. ]

***

고대의 사령술사는 첫 패턴부터 전멸기를 사용하는 레이드 보스였다.

랜턴을 흔들 때, 랜턴을 바라보고 있으면 악몽에 삼켜져 그대로 즉사하게 된다.

이 패턴을 파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랜턴을 보지 않거나, 랜턴을 흔드는 걸 저지하면 된다.

‘이젠 안 당하네.’

어제와 달리 푹 자고 와서 그런가.

랜턴 패턴은 이제 쉽게 넘기는 대기업 파티였다.

“초조한가요.”

어제, 스윗트는 감정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파티에 공유했다.

랜턴에 레이븐이 갇혀있기에, 랜턴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스토리 상으로 엘더리치 레이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레이븐의 구출이었다.

그래서 자꾸 랜턴 패턴을 신경 써야 했고, 이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대기업 파티는 반나절이란 시간을 박아서 클리어를 앞두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제한 3분.’

고대의 사령술사의 남은 체력은 단 두 줄.

긴박한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한 패귀가 귀신같이 패링에 성공했고.

각을 보고 있던 스윗트가 블링크 서릿발 콤보를 쓴 뒤, 그대로 파이어 볼을 영창했다.

– 잡았다!

마침내 고대의 사령술사를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고.

한곳에 모인 대기업 파티가 다 같이 환호성을 내질렀던 그때.

악몽의 랜턴에서 해방된 레이븐의 앞으로 고대의 사령술사의 원혼이 나타났다.

– 어쩔 수 없이, 반이라도 가져야겠군.

고대의 사령술사는 엘더리치의 육신을 버리고 레이븐에게 깃들었다.

– 나를 받아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저 녀석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도록 갈기갈기 찢어주마.

실제로 고대의 사령술사는 그럴 힘이 남아있었다.

물론 그 힘을 쓰게 되면 원혼의 소멸로 이어져,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된다.

레이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고대의 사령술사의 사상을 주입 당했으니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고문을 당하고.

끝없는 악몽으로 인해 정신이 무너진 상태에서.

레이븐은, 고대의 사령술사의 협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

소중한 인연이 죽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또 다시 희생을 선택했다.

결국, 레이븐은 고대의 사령술사의 원혼을 받아들였다.

[ Raid Boss 완전한 레이븐 Lv.60 ]

이것이 내가 준비한 엘더리치 레이드의 마지막이었다.

***

엘더리치 레이드의 마지막이 공개되었다.

대기업 파티는 모두 말을 잃었고, 커뮤니티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디 마이너 게임 갤러리]

―――

스포)레이븐이 보스로 변해서 깜짝 놀랐네 [1191]

??? : 아직 따듯해… [1589]

마지막 페이즈 대기업 파티 표정 모음.jpg [946]

팩트는 호감도 NPC라서 죽여도 안 죽음 [1234]

스즈카 시점에선 레이븐이 남자로 보이네 [1003]

―――

[제목] 스포)레이븐이 보스로 변해서 깜짝 놀랐네

(보스로 변한 레이븐 짤)

분명 레이븐 일병 구하기 아니었냐고

추천 150 비추 2999

―――

[댓글 1191]

이 씹새는 제목으로 스포 다해놓고 스포) ㅇㅈㄹ하네

ㄴㄹㅇㅋㅋ

ㄴ스포만 붙이면 스포가 아니게 되냐고

ㄴ작성자 뺨 존나 후리고 싶네

작성자 아카레 직업 뭐야?

ㄴ(작성자) 나 아카레 안해!

ㄴ이런 씨발련이

ㄴ아오 겜안분

―――

현재 대기업 파티는 레이븐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등장한 것에 비해, 레이븐의 패턴은 단순했다.

동시에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모습은, 마치 레이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레이븐 레이드는 결코 쉽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뿐, 패턴 하나하나가 매우 치명적이었고.

패턴이 단순할 뿐, 고대의 사령술사보다 많은 패턴을 구사했다.

―――

[제목] 근데 보스로 변한 레이븐 나만 이뻐 보이냐?

(은발 적안으로 변한 레이븐 짤)

원래는 금발 벽안에 밝은 이미지였는데

은발 적안에 분위기가 어두워지니까 더 꼴려짐

고대의 사령술사 << 사실은 꼴잘알이었던거 아님? 추천 850 비추 3 ――― [댓글 455] 고대의 사령술사님 잊지 않겠습니다 ㄴ아직 레이븐 안에 살아계셔 임마 ㄴ레이븐 안에...? ㄴ(유니콘이 격노하는 콘) ――― 바뀐 레이븐의 외형에 대한 떡밥도 잠깐 돌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대기업 파티가 몇 번의 리트 끝에 마침내 레이븐을 쓰러트렸고. 모두가 기다렸던 엘더리치 레이드의 엔딩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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